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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ew Park

진실을 내친 캘리포니아 "Farewell, University of California"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어바인 캠퍼스(UC Irvine)의 의과대학 교수인 애런 케리아티 박사(Aaron Kheriaty)가 지난 12월 백신 의무화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해고를 당했다. 이에 대한 그의 글을 보면 진실을 말했을 때 겪게 되는 탄압이 얼마나 악의적이고 무서운지 알 수 있다. 우리의 삶을 발전시키는 개인의 능력보다 집단의 내러티브(narrative)에 순종해야 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글이라 소개한다.


잘 있거라,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


지난 8월, 나는 UC의 백신 의무화를 연방법원에 고발했다. 그리고 어제는 대학 측에서 백신 접종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나를 해고했다. 내가 거의 15년을 UC 어바인(UCI) 의과대학 교수로, 그리고 UCI 보건센터 의료 윤리 디렉터로 근무한 곳인 UC에서, 아래와 같은 즉시 효력의 통지를 어제 받았다.


“당신의 응답을 고려해본 결과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다. APM-150에 따라, 이 통지는 고용 계약의 완료 이전에 해고절차에 돌입한다는 UC 어바인의 서면 통지임을 밝히며, 해고에 대한 불만의 기간 동안 무급 정직의 시정조치 대상이라는 것도 알린다.”


이 해고로 인해 내가 UCI에서 지냈던, 특히 이번 코비드 팬데믹 때 보냈던 시간들을 돌아보게 됐다. 2년 전만 해도, 나와 다른 의사, 간호사, 교직원, 스태프, 그리고 학생들을 이 대학이 임의의 그리고 급작스러운 이유로 해고할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여기서 내 스토리를 공유하고자 한다. 내가 특별나서가 아니고, 단지 내 경험이 이 광기가 시작된 이후로 같은 경험을 당한, 그리고 나와는 달리 밖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나는 팬데믹 동안 병원에서 매일 환자들을 진료했다. 진료소, 정신 병동, 응급실, 그리고 여러 병동에서 매일 환자를 봤다 -- 응급실, 중환자실, 그리고 의과병동의 코비드 환자를 포함해서. 수석 윤리 컨설턴트로서 나는 코비드로 죽어가는 환자의 가족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들의 슬픔 속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인도하려고 내 최선을 다했다. 임신한 레지던트들이 코비드 환자를 돌보는 게 걱정스럽다고 했을 때, 병원 관료들은 이들이 코비드의 위험성에 전혀 노출되지 않는다고 안심시켰다 -- 이는 당시에 그 어떤 근거도 없던 주장였다. 이게 거짓이란 걸 우리는 이제 알게 됐고. 내가 상담 서비스를 안 맡았을 때도 이런 걱정하는 레지던트들을 위한 코비드 상담을 하는 걸 봤다.


팬데믹 초기에 N-95 마스크가 부족하자 병원이 마스크를 사물함 속에 잠가뒀던 것도 기억한다. 병원 관료들이 수술용 또는 천 마스크를 쓰는 간호사들에게 호통을 치기도 했다. (이건 CDC가 아무 근거도 없이 마스크가 방역에 도움이 된다고 마스크에 미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처음에는 마스크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간호사들은 그들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거다.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게 팩트라는 진짜 이슈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병원 관료들은 이들을 호통치고 조롱까지 했었다. 이 상황에서 나는 근처 공사업체에 연락해서 그들로부터 N-95 마스크를 600개 들여왔다. 그중 몇 개는 내 부서의 레지던트와 응급실의 동료들에게 나눠줬다. 그리고 나머지는 병원에 기부했다. 이 와중에 병원 관료들은 (어제 나를 해고한 그 사람들) 아주 안전하게 재택근무 하면서 개인보호장구(PPE) 부족현상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2020년, UC 총장실에서 팬데믹 때 리소스의 분류와 백신 할당에 관한 UC 정책을 기안하는 일을 돕느라 나는 무급으로 밤과 주말에도 일을 했었다. 인공호흡기를 어느 환자에 우선 배정할지 정하는 게 공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을 알았던 총장실에서는 나와 정책위원회 의장에게 이 정책에 대한 시민과 언론의 질문에 응대하고 이 정책의 원칙과 근거에 대해 설명하는 대변인의 업무를 수행해달라고 요청했다. (방송출연 연습까지 시켜줬다.)


UCI에서 의대생들의 4년 커리큘럼 전체를 지도했던 유일한 교수가 나였다. 그래서 난 학생들 뿐만 아니라 대학의 그 어떤 사람들도 다 알았다. 팬데믹 초기에 학생들을 집으로 처음 돌려보낼 때 그 학생들에게 잘 설명해달라고 학장이 나한테 요청했다.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에 반대했지만 (아니, 의료행위를 배우러 온 학생들을 돌려보내? 이런 팬데믹 때일 수록 학교에 남아서 더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난 그들에게 학교 병원을 떠나서라도 팬데믹에 대응하는 노력을 계속 하라고 권장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도 전달이 되도록 공개했다.


이 글을 학장이 다른 UC 캠퍼스의 학장들에게 보냈다. (이 글에 감동했는지) 그중의 한 명은 내가 그 해의 모든 UC 캠퍼스의 졸업축사를 하라고 제안까지 했었다. 3년 전에 UCI 의과대학의 학장들은 나에게 의대 입학식(White Coat Ceremony)에서 신입생들에게 환영사를 하라고 요청했다. 그들의 말을 빌자면, “당신이 의대에서 가장 훌륭한 교수"라는 게 이유였다. 지난 수년 동안, 내가 가르쳤던 정신과 실습과정은 임상 과목 중에 최고의 평점을 받은 과목였다.


대학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내가 그동안 했던 일의 팬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그게 아닌 게 돼버렸다. 내가 그들의 정책에 대해 한 번 이의를 제기하자 나는 그 즉시 “지역사회의 보건과 안전에 위협적인 존재"가 됐던 거다. 자연면역이나 백신의 안전과 효력에 관한 그 어떤 실증적인 증거도 더 이상 중요하지가 않았다. 대학 지도층은 과학적 논쟁이나 윤리적 사고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내가 무급 정직에 놓였을 때 나의 유급 시간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다시 말해서, 백신을 안 맞았기 때문에 캠퍼스 진입도 금지됐었다. 또한 휴가도 못 냈다. 왜냐하면… 나는 미접종자였기 때문에. 정당하고 공정한 고용의 모든 기본 원칙을 위반하면서까지 대학 측은 내가 무급 정직인 상태에서 그 어떤 전문적 업무의 수행을 학교 밖에서 못하도록 하려는 거였다. 내가 사퇴하도록 압력을 넣기 위해 그들은 나의 수익활동을 제한하려는 거였다. 학교 내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이럴 수가 있는지 정신이 혼미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이제 공식적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이 대학에서 근무했던 나의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사실, 난 내 동료들, 레지던트들, 그리고 나의 학생들이 그리울 거다. 강의와 지도, 그리고 병원의 가장 힘든 케이스들에 대한 윤리 상담을 나는 그리워할 거다. 내가 동료들에게 앞서 편지에 썼듯이, 나의 독자들에게도 지난 몇 개월 간의 성원과 위로에 감사드리고 싶다. 개인업으로 전환하고 제퍼 인스티튜트로 가서 나의 업무를 확장시킴에 따라, 새해에는 나에게 새로운 기회와 활동 영역이 펼쳐질 거라고 믿는다.


이제 나의 대학교 타이틀이 사라졌으니 이 사이트와 내 다른 웹사이트에서 내 경력을 업데이트 해야겠다 -- 거기에 나의 과거 글과 인터뷰, 연설들을 볼 수 있다. 다음 주에, 나의 소송과 식품의약국(FDA)에서 받은 화이자 문건 관련 업데이트를 할 예정이다. 기대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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